나의 이름을 불러줘 Lording “…여긴, 어디야?”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 날 반겼다. 달빛조차 내리쬐지 않는 어두운 골목 아래 희미하게 비치는 풍경. 곳곳에 널린 쓰레기들과 풍겨오는 악취는 내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인상을 쓰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개를 돌린 측면의 골목에서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그다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 도망, 도망을 쳐야 한다. “호오, 꽤 반반한 년이잖아? 흐흐, 가만히 있어. 좋은 걸 해줄 테니까.” 그는 낡고 헤진 갈색의 더러운 가죽잠바를 입고 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나에게 다가온다. 기분이 끝없이 불쾌해지는 것은 다른 사람이었어도 마찬가지였겠지. 나는 도망..
[데미리즈] 공포영화 *드림 주의* 그러니까, 영화를 본다는건 서로 호감이 있다는 뜻 아닐까. 리즈는 제 손에 쥐어진 영화표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어째서 이 작은 꼬마 도련님이 자기와 함께 영화를 보자고 하는걸까. "잠자코 받아!" 약간은 고압적인 목소리로(하지만 그래봤자 리즈에게는 작은 아이일 뿐이었다), 그렇게 말하는 데미안의 귀는 잔뜩 붉어진채였다. 리즈는 생각했다, 오호라, 이 꼬마 도련님이 제게 호감이 있구만? 리즈는 잠깐은 어울려주기로 했다. 뭐, 이런 것도 딱히 나쁘지는 않았다. 조커가 본다면 화를 낼지도 모르겠지만, 자기가 알기로 그는 고작 이런 일로 화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거리낄 것은 없지. 리즈는 실실 웃으며 데미안을 꼭 끌어안았다. "꺄하, 우리 작은 ..
0.말해줘요, 아버지.설령 거짓이라도 좋아요. 그러니 그 입을 열어 내게 말해줘요. 나는 단 한번이라도, 당신의 딸이었나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뒤집어쓴 후드 위로 빗방울이 맺혔다가 떨어졌다. 한숨을 폭 내쉰다. 눈앞의 존재에 온 몸을 긴장시킨다. 그와 나는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다. 확실히, 친했다면 친했다고 할 수 있을법한 그런 사이었다. 지금은 그조차 산산이 부서져 깨져버렸지만. 잠깐의 대치상태가 흐르고,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세나.” 당신은 대체 무슨 낯짝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걸까. 작게 중얼거리는 것을 내가 못 들었을리 없었다. 확실히, 나는 훈련받았고, 뛰어났던 아이었으니까. 여하튼 나는 그 부름에 따라 입을 열었다.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말해야만 할 것 같아서. “..
PURE EVIL Written by Redelhightze 사람은 누구나 일생에 한번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 선택은 아주 사소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릴 중대한 선택일 수도 있다. 나는 언제나 망설임 없이 선택해왔으나, 그것들은 결국 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러나 다시 찾아온 기회에서도 난 여전히 망설임 없이 선택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한 번 ‘죽음’으로 떨어졌다. 나는, 할리 퀸이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퇴근길에 가슴을 옥죄는 고통에 쓰러진 이후로 매일 밤, 눈을 감으면 끔찍한 고통이 찾아오는 삶을 살았다. 심장을 쥐어짜내고, 온 몸의 피를 뽑아내며 살갗을 찢어발기는 듯한 그런 고통들. 잠들지 못하는 나날이 며칠이고 이어졌다. 그것들은 처음에는 잔잔하고, 조..
조커 x 배트맨 물들어가다 Written By. Redelhightze "하하하하하하-!! 흐, 하하하!!"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찔렀음일까, 숨쉬기가 갑갑했지만 조커는 개의치 않고 크게 웃었다. 어떻게 웃지 않을 수가 있을까! 자신의 작은 박쥐가, 괴물이라 칭해지던 그 배트맨이 이미 죽어버린 제 울새를 붙잡고 슬퍼하고 있는데! 조커는 움직일 힘도 없어 그저 땅바닥에 누워서 제 앞의 배트맨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앉은 배트맨의 그 거대한 등 뒤에서는 후회와, 좌절과, 슬픔이 진득하니 묻어나왔다. 조커는 그것이 제법 웃겼다. 그야, 그것들은 인외라 칭해지던 배트맨의 지극히도 인간적인 모습이었으니까. 조커는 다시 소리높여 깔깔 웃어댔다. 온 몸이 욱신거리고 뼈가 부러지고 피가 날 지언정 그는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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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UE ROSE 어두운 밤하늘, 달빛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건물 안에서 소녀, 애나는 기쁨에 찬 웃음을 지었다. 차가운 방바닥에 속절없이 쓰러져있는 광대, 조커. 그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와 애나의 손에 쥐여진 파이프에 묻은 피가 그녀의 염원을 향해 다가가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크으... 그래, 기쁜가?” “하아, 하아... 그것도 엄청.” 애나는 허튼 짓 못하도록 쓰러진 광대의 팔과 다리를 케이블타이로 꽉 묶었다. 피가 통하지 않으며 저릿해져오는 사지에 조커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이제 곧 죽을 목숨일 텐데도 그는 그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천천히 나이프를 조커의 목에 갖다댔다. 명백한 살의가 흉흉하게 그녀의 눈에서 피어올랐다. 쿵-... “!!” 그러나 그 순간 묵직하게..
귀에서 이명이 그치질 않고 w. 리델하이츠 -본문에는 게임 아캄시티와 아캄나이트에 대한 아주 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그 소리는, 나의 아침부터 시작된다. "오, 브루-시, 일어날 시간이야! 브루-시, 브루-시?" 그렇게 아침부터 밤까지, 심지어는 꿈 속에서도. 언제나 단 한번도 멈추지 않고.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난 또다시 그 환영을 쫓고 마는 것이다. 귀에서 이명이 그치질 않고 -by 리델하이츠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브루스 주인님? 오늘은 신에너지 기술 관련 인터뷰가-..." "오, 저 양반은 아침부터 기운차구만! 헤이, 브루시? 설마 저 빡빡한 일정을 전부 따라갈 생각은 아니겠지? 옆에서 지켜봐야하..
[숲뱃]깨어져버린 거울 -by 리델하이츠 이리 될 것을 알고 있었지. 너란 거울은 단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하기 그지 없어서 조금만 힘을 주어 버리면 이리 산산조각 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직 제 품에서 보내지 못한 작은 울새가 떨어져버린 충격에 네가 하던 고민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너는 단단했고, 다시 일어섰지. 그때 미묘하게 일어난 균열을 네가 모른채 했음도 나는 알았다. "브루스." "아, 기자님. 오늘도 인터뷰인가요? 하하." "....브루스." "....이런, 무슨 일인가, 클락." 너는 애써 그 균열을 감추려 했으나 제 가면을 벗을 타이밍조차 잊어버린 너는 참으로 안타까웠다. 앞으로 너는 얼마나 더 네 자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문득 그것이 궁금해졌다. "좀 쉬어. 꼴이 말이 아니야..
[뱃슨] 나를 좀 봐줘요. 당신은 예전부터 그러했다. 나에게 단 하나의 관심이라도 보여주지 않았지. 나는 그것이 싫어서 더욱 말썽을 피우고는 했다. 적어도 그런 날이면 당신은 날 봐줬으니까. 비록 애정이 담긴 눈은 아닐지라도 날 봐줬으니까. 하지만 그게 잘못된거였나요? 다시 마주한 세계에서 당신은 나를 완전히 잊은 것 같았다. 나는 적어도 당신이 화 정도는 내줄 줄 알았어. 나를 잃은 분노에 그 자식을 없앨거라고 막연히 기대했었는데. 내가 죽으면 당신의 세계가 무너질거란 기대는 헛된 것이었나? 나에게는 당신이 전부였었건만, 당신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 복수를 다짐했다. 당신이 내게 아무리 사과한들 받아주지 않을 생각이었어! 아무리 당신이 예전 내 세계..